자신을 하이바 리에프라고 소개한 남자는 카게야마를 동네 놀이터로 데리고 갔다. 낮이면 아이들이 까르르 뛰어노는 놀이터도 새벽 시간에는 한적할 따름이었다. 남자는 비어있는 빨간색 그네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는 긴 다리를 쑤욱 접으며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당신과 처음 만난 곳이랑 비슷해요.” “난 기억 안 나는데. 그보다 어릴 때 한 번 만난 나를 어떻게 찾아온 거지?” “길에서 우연히 보고 한 눈에 당신이란 걸 알았어요. 그 뒤는... 무작정 당신을 따라와서 이 근처에 산다는 걸 알았어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네 기억 속 어린 애가 내가 맞긴 해? 의심스러운 표정을 한 카게야마에게 리에프는 싱긋 웃어 보이더니 제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여름이었어요. 무지 더웠죠. 저는 주택가의 담벼락이..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쿠로오가 사는 맨션은 그가 자주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다. 옷장이며 식탁, 선반 등 필요한 가구는 모두 갖춰져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사람이 쓴 흔적은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의자에 걸려있는 셔츠와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넥타이가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흩어져있는 옷가지를 하나하나 집어 올리며 카게야마는 쿠로오의 뒤를 따라갔다. 느릿하게 걷던 쿠로오가 침실에서 넥타이에 손을 댔을 때에는 카게야마 양팔에 이미 옷가지가 한가득 걸려있었다.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데.” “치우는 게 맘이 편합니다.” ‘어차피 또 금방 어지럽힐 건데.’ 쿠로오는 마지막 말은 굳이 내뱉지 않았다. 겉옷을 벗어 대충 의자에 걸쳐놓으려 했으나 카게야마는 그마저도 기어코 받아 옷..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 다소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어린 시절, 딱 한 번 보았던 동화책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형들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곰 인형, 무용수 인형, 공룡 인형 등 갖가지 인형들은 달빛을 받으면 살아나 움직이고 아침이 되어 달빛이 사라지면 실이 끊긴 듯 자리에서 픽 쓰러졌다. 그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실이 끊긴 인형. 자신의 발치에 널브러져 있는 사내는 그야말로 인형이었다. “못난이 인형.” 남자는 시체를 발로 툭툭 차며 중얼거렸다. 문득 편안히 감고 있는 눈이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잤었는데.’ 남자가 칼을 꺼내어 눈꺼풀을 도려냈다. 멍청하게 흐려진 눈알 위로 피가 흘렀다. 불쾌함에 눈썹을 찡그린 남자는 시체의 얼굴에 한참동안 발길질을 했다. 힘없는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