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게른온 2회에 낸 배포본에 실린 글입니다. 나는 영원히 어두운 검정에 묻혀 살아야한다. 기어코 살인을 저지른 날, 그리 마음먹었다. 늘 돈과 존엄을 저울질하며 살아가는 나는 세간에서 흔히 쓰레기라 부르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센티넬Sentinel로서 새롭게 눈을 뜬 해에 예전부터 자식을 짐짝으로 여겼던 부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정부에 팔아넘겼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과 사지에는 족쇄가 채워졌다. 사육사나 다름없는 정부 측 인간들, 개처럼 기관에서 세뇌당하는 센티넬, 가이드, 센티넬, 가이드... 하루하루 죽어가던 와중에 내가 가이드Guide가 필요 없는 제로 타입Type- zero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열쇠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손에 쥐어진..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조그맣고 푹신푹신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털이 조금 날릴 수도 있는데요. 그런 분들께는 미리 마스크를 준비해주시길 부탁 드릴게요. 미야기 작은 마을 길가를 주욱 따라가다 보면 유독 탐스러운 벚꽃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벚꽃나무를 오른쪽으로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아담한 집이 나오는데요, 여기에서 카게야마가 조그마한 아이들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만 어쩌다보니 대가족의 가장이 되었네요. 집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고 카게야마도 빈번히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만, 진심으로 화난 적은 없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아주 좋아하니까요. 우선은 고양이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쿠니미가 화를 낸답니다. 아, 쿠니미는 카게야마 가에 제일 처음 들어온 고양이입니..
※ ZE au. 운명의 상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서로 이어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실은 너무 약하고 금방 끊어질 것 같잖아. 그러니까 나는 붉은 실이 아니라 붉은 끈으로 당신을 얽고 얽어서 절대 끊어지지 않도록,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할 거야. 가문의 언령사 하나가 재로 돌아갔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였으나 죽음은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인해 그의 카미(紙)가 손쓸 틈도 없이 죽었다. 장례식은 식(式)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게 치러졌다.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가문 내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은 사내가 아니었던 탓이다. 언동이 난폭하여 일반인 앞에서도 언령(言靈)을 사용해 가문 전체가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카미를 거칠게 다루어 백지(白紙)..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얼음장이 따로 없었다. 입김이 하얗게 부서졌다. 카게야마는 급한 대로 라디에이터를 틀고 두툼한 이불을 바닥에 깔았다. 외투를 벗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해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리에프는 그동안 별 움직임이 없었다. 단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코로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카게야마 씨 냄새가 나요.” “냄새? 씻었는데... 미안.” 카게야마는 얼른 팔이며 옷을 들어 코를 대어보았다.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원래 제 체취는 잘 못 맡는 법이니까. “아뇨, 좋은 냄새. 따뜻한 냄새.” 리에프가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를 했다. 어쨌든 나쁜 냄새는 아니란 소리겠지. 카게야마는 리에프가 들고 있던 봉지를 받아 들고는 내용물을 차례대로 꺼냈다. 유부초밥이 하나, 둘, 셋, 넷..
*연반AU 1월의 분위기는 하늘의 떠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왠지 모를 부유감과 함께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간다. 바뀌는 것은 달력의 숫자뿐이며 해가 바뀐다고 해서 인생이나 생활이 달라지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기대가 가득 찬 표정으로 거리를 오고간다. 특히나 카게야마의 직장인 바(Bar)가 있는 번화가는 더욱 그러했다. 카게야마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을 떠올렸다. 알코올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손님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했고 새해가 되자마자 저마다 들고 있던 술잔이나 술병을 비웠다. 왁자지껄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카게야마는 새해 인사를 건네 오는 손님들에게 적당히 인사를 하며 셰이커를 흔들었다. 한 해가 갔다는 아쉬움도,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는 고양감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