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중인 체육관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열기로 가득하다. 코치의 목소리와 부원들의 기합 소리가 실내를 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거친 숨소리가 더해진다. 사방으로 공이 튕기고 흩어지고를 반복한다. 튀어나가는 공과 함께 카게야마 토비오의 시선도 이리저리 바빴다. 그러나 시선을 곧게 죽 그어보면 마지막에는 항상 스가와라가 있었다. 연습에 집중을 하다가도 어딘가 수평이 고장 난 기계처럼 고개가 돌아갔다. “잠시 휴식!” 코치의 외침과 함께 모든 공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부원들은 저마다 수건과 물통을 찾아 체육관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러나 스가와라는 코트에 서서 리시브와 토스 자세를 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했던 연습을 곱씹어보는 듯했다. 몇 번을 더 해보다 그 역시 조금은 지쳤는지 팔을 내리고 티셔츠로 땀을..
그 남자는 자신보다 훨씬 꽃에 어울렸다. 카게야마는 빗자루로 가게 바닥을 쓸며 남자의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다리를 다친 어머니를 도와 꽃집 일을 한 지 일주일. 남자는 이틀째 되던 날에 처음 왔고, 이후 매일 꽃집을 찾아왔다. 남자는 카게야마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으나 어찌됐든 가게 매상을 꾸준히 올려주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로즈마리 화분 열 개 주세요.” 지난주에 남자가 미리 로즈마리를 살 것이라 말을 해두었기 때문에 로즈마리의 수량은 충분했다. 그러나 남자의 주문이 여기서 끝날 리 없다. 카게야마는 화분을 하나씩 상자에 넣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빨간 튤립도 하나 주세요.” 왔다. 화분을 옮기던 팔이 일순 굳었다. 남자는 느긋하게 서서 꽃집 알바생의 ..
안녕하세요. 히나타 쇼요입니다. 저에겐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아뇨,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요. 바로 카라스노 팀 동료인 카게야마 토비오 군 때문입니다. 카라스노에는 얼마 전부터 공공연한 소문이 퍼져있습니다. 바로 카게야마가 3학년인 스가와라 선배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스가와라 선배야 참 멋있죠. 언제나 온화한 얼굴에 상냥하고, 시합에서 실수해도 도닥여주고, 잘하면 엄청나게 칭찬해주니까요. 누구든 선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가와라 선배는 아직 애인도 없으니까 카게야마가 스가와라 선배를 좋아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카게야마가 스가와라 선배를 좋아하는 자기 마음을 자각하지 못 하고 있다는 거죠. “카게야마! 다음 순서가 너인데 어딜 보는 거..
쿨럭쿨럭 기침을 하면서 스가와라는 비죽 헛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린 현실이 퍽 우스웠다. 얼마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다했는데 연습으로 진탕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와 무작정 에어컨 바람을 쐰 것이 원인인 듯 했다. 불행히도 연습 때문에 자신만 남고 가족들은 여행을 갔기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말이라 연습이 없는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3학년씩이나 되어서 후배들에게 건강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특히 카게야마에게는 더욱 그랬다. 아, 약을 사러 가야하는데. 몸살 기운도 있어서 온 몸이 저릿저릿하고 기운이 없었다. 병원은커녕 약국에도 갈 자신이 없다. 그냥 침대 위에서 물먹은 솜 마냥 추욱 가라앉아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간..
연습이 없는 주말이었다. 연습은 하루도 쉴 수 없다며 카게야마는 바득바득 우겨서 스가와라와 함께 동네 공터로 나갔다. 그러나 사십 분 뒤, 둘은 나란히 스가와라의 집 방바닥에 반쯤 녹은 사탕처럼 축 눌어붙어 있었다. 원인은 폭염이었다. 사실 오늘은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로, 길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였다. 이런 날에도 카게야마는 연습을 빼먹을 수 없다며 바득바득 우겼다. 평소 카게야마의 연습욕은 충분히 알고 있었던 터라 스가와라는 어쩔 수 없이 같이 나가주긴 했지만 연일 열사병 환자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는 요즘이었다. 바알간 뺨을 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카게야마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내버려두었다가는 이번에는 K모군이 뉴스에 나올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더..
찰칵하고 휴대전화의 셔터 효과음이 울렸다. 이질적인 그 소리는 시장통 같은 체육관 안에서도 스가와라의 귀에 꽂혔다. 옆을 돌아보니 카게야마가 허겁지겁 손을 뒤로 숨기고 있었다. 틀림없이 휴대전화겠지. 요즘 녀석은 수상했다. 카게야마는 사진을 찍거나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즐기는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주일 전 갑자기 비장한 태도로 스가와라 선배, 웃어주세요 라고 말하기에 영문도 모르고 어색하게 웃어줬더니 휴대전화로 자신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뭐라고 물어볼 틈도 없이 휙 하니 도망가 버렸다. 그 뒤로 카게야마는 자신을 수시로 찍었다. 장소도 가리지 않고 말도 없이 찍어댔다. 파파라치에게 찍히는 연예인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