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E au. 운명의 상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서로 이어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실은 너무 약하고 금방 끊어질 것 같잖아. 그러니까 나는 붉은 실이 아니라 붉은 끈으로 당신을 얽고 얽어서 절대 끊어지지 않도록,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할 거야. 가문의 언령사 하나가 재로 돌아갔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였으나 죽음은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인해 그의 카미(紙)가 손쓸 틈도 없이 죽었다. 장례식은 식(式)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게 치러졌다.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가문 내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은 사내가 아니었던 탓이다. 언동이 난폭하여 일반인 앞에서도 언령(言靈)을 사용해 가문 전체가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카미를 거칠게 다루어 백지(白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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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AU. 어느덧 초겨울이었다. 줄지어 심어진 나무 아래 낙엽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낙엽을 밟으며 까르르 웃는 어린 나인들 옆을 지나며 카게야마는 초조한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에 날려 온 낙엽 한 장 밟지 않으려 애쓰며, 그늘 속을 걷는 그는 이름만큼이나 새까만 의복을 차려입어 언뜻 보면 그림자가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입은 화의 근원이다. 카게야마가 황궁 문턱을 처음 넘은 다섯 살 무렵부터 그의 아비는 아들에게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말했다. 보아도 보지 않았고,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니며, 입은 태산보다 무거워야 한다. 어렸던 카게야마는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아버지의 눈이 너무나 매서웠기에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궁 안에서는 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세 치 혀가 목숨을 좌지우지한다는..
※ 연령반전. 여장. 잠깐만 기다려 봐요. 종이가방을 꼭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환한 웃음 뒤에 음험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의심을 했어야했다. 그저께부터 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매 시간 흘러나왔는데도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홀랑 젖은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의심을 했어야 했다. 하이바 리에프는 일견 단순해보이지만 맹수의 이빨을 숨기고 있는 앙큼한 녀석이라는 걸 카게야마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때문에 리에프가 터무니없는 꼴로 방에서 다시 나왔을 때 카게야마는 녀석을 탓하기보다는 아둔한 자신을 향해 탄식했다. “왜요? 안 예뻐요?” 리에프가 치맛자락을 잡고 한 바퀴 휙 돌아보였다.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 길이의 치마가 원심력에 의해 더욱 공중으로 휘날렸다.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였다.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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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게 빛나는 눈동자. 아이는 나물을 캐던 손을 멈추고 한 곳을 응시했다. 풀숲 사이로 눈이 내린 줄 알았더니 새끼 여우가 있었다. 고개만 빼꼼히 내민 여우는 올해 열 넷이 된 아이의 머리통보다도 작아보였다. 산짐승은 본래 사람을 싫어하기 마련인데 여우는 어째서인지 도망가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짐승과 친밀하게 지내본 경험이 없는 아이는 그것이 신통하여 최대한 자세를 낮춰 시선을 맞추었다. 새끼 여우의 털색은 계절과 전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보통 여우의 털은 노랗거나 붉은 데 반해 푸른 풀잎 사이로 보이는 여우는 몸이 온통 새하얬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이었다면 훌륭한 보호색이 되었을 테지만 이렇게 녹색 빛이 만개한 여름에는 도리어 눈에 띄는 색이었다. 그러나 희귀한 털색보다도 아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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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언제나 놀이터 구석에 있는 화단 턱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목도리가 얼굴의 절반을 가렸기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가 더욱 도드라졌다. 움직이면서 노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오히려 추울 텐데도 아이는 커다란 눈으로 아이들을 가만히 구경하다가 어느 샌가 사라지곤 했다. 놀이터의 어떤 아이도 화단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기에 카게야마는 그 아이가 요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옅은 색의 머리카락도 그렇고 풀색 눈, 하얀 피부는 이제껏 보아온 다른 일본인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자신만 해도 머리카락이 새까맸으니까. 귀신이라는 선택지가 없던 것은 아이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었다. 자주 입고 나타나는 빨간 코트가 마치 드레스 같아보였는데. 소매 끝으로 삐져나온 손이 유독 신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