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단지 호흡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는 한낱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이에 어떤 이는 나의 시간을 경외했으나 어떤 이는 섭리에서 벗어난 이단이라며 저주했다. 저주가 통한 걸까, 수없이 많은 존재가 세상에 떨어졌다가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져갔다. 태양과 달은 매일 새로웠지만 늘 같은 하늘을 맴돌았고, 인간은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일정한 범주 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알 수 없던 거대한 세계 속에서 보자면 그들은 쳇바퀴를 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나는 오래 전 내게 이단이라 손가락질했던 인간을 비웃었다. ..
2017년 4월 29일 오이카게 온리전 "그 선배에 그 후배" "[집8] 오이카게 애 낳았어 내가 다 봤어" 부스에서 나오는 글 회지 정보입니다. 신간 1. 통증 전연령 / A5 무선제본 / 76p / 7,000원 2. 흘러넘치는 전연령 / A5 중철제본 / 12p / 무료 배포본 구간 1. 투명한 전연령 / A5 무선제본 / 68p / 6,000원 (현장판매분만 소량 가져갑니다) ▼ 수량조사 및 예약은 이쪽에서 (2017년 4월 13일~21일까지) 종료되었습니다. http://naver.me/FoMFZ8xX 궁금하신 점은 트위터(@RANNNTAKU)나 이 글의 댓글 또는, 폼에서 문의 부탁 드립니다. ※ 선입금은 받고 있지 않습니다만, 폼에 예약 코멘트를 남겨주신 경우 책을 따로 빼놓도록 하겠습니다. ..
※ 통증(http://rannntaku.tistory.com/77)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 오이카게 온리전 "그 선배에 그 후배"에 나올 글의 일부입니다. * 토비오의 하루는 느지막이 시작되었다. 미처 뜨지 못한 눈으로 오이카와에게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고 두 번째 잠에 빠져드는데, 깨면 시계에 맞춘 듯 열두 시였다. 멍하니 빈 방을 둘러보다가 느릿느릿 일어나 샤워를 하면 열두시 반쯤. 머리는 반드시 샴푸로 감았다. 비누로 감았다고 오이카와가 삼십 분을 잔소리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밥도 그가 챙겨주고 간 반찬들로 해결했다.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휘파람 연습에 열중했다. 벌써 몇 달째인데 제대로 된 휘파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휙, 휙 하는 바람소리가 줄어든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토비오는 ..
※ 카게른온 2회에 낸 배포본에 실린 글입니다. 나는 영원히 어두운 검정에 묻혀 살아야한다. 기어코 살인을 저지른 날, 그리 마음먹었다. 늘 돈과 존엄을 저울질하며 살아가는 나는 세간에서 흔히 쓰레기라 부르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센티넬Sentinel로서 새롭게 눈을 뜬 해에 예전부터 자식을 짐짝으로 여겼던 부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정부에 팔아넘겼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과 사지에는 족쇄가 채워졌다. 사육사나 다름없는 정부 측 인간들, 개처럼 기관에서 세뇌당하는 센티넬, 가이드, 센티넬, 가이드... 하루하루 죽어가던 와중에 내가 가이드Guide가 필요 없는 제로 타입Type- zero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열쇠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손에 쥐어진..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조그맣고 푹신푹신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털이 조금 날릴 수도 있는데요. 그런 분들께는 미리 마스크를 준비해주시길 부탁 드릴게요. 미야기 작은 마을 길가를 주욱 따라가다 보면 유독 탐스러운 벚꽃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벚꽃나무를 오른쪽으로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아담한 집이 나오는데요, 여기에서 카게야마가 조그마한 아이들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만 어쩌다보니 대가족의 가장이 되었네요. 집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고 카게야마도 빈번히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만, 진심으로 화난 적은 없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아주 좋아하니까요. 우선은 고양이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쿠니미가 화를 낸답니다. 아, 쿠니미는 카게야마 가에 제일 처음 들어온 고양이입니..
※ ZE au. 운명의 상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서로 이어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실은 너무 약하고 금방 끊어질 것 같잖아. 그러니까 나는 붉은 실이 아니라 붉은 끈으로 당신을 얽고 얽어서 절대 끊어지지 않도록,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할 거야. 가문의 언령사 하나가 재로 돌아갔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였으나 죽음은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인해 그의 카미(紙)가 손쓸 틈도 없이 죽었다. 장례식은 식(式)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게 치러졌다.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가문 내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은 사내가 아니었던 탓이다. 언동이 난폭하여 일반인 앞에서도 언령(言靈)을 사용해 가문 전체가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카미를 거칠게 다루어 백지(白紙)..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얼음장이 따로 없었다. 입김이 하얗게 부서졌다. 카게야마는 급한 대로 라디에이터를 틀고 두툼한 이불을 바닥에 깔았다. 외투를 벗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해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리에프는 그동안 별 움직임이 없었다. 단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코로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카게야마 씨 냄새가 나요.” “냄새? 씻었는데... 미안.” 카게야마는 얼른 팔이며 옷을 들어 코를 대어보았다.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원래 제 체취는 잘 못 맡는 법이니까. “아뇨, 좋은 냄새. 따뜻한 냄새.” 리에프가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를 했다. 어쨌든 나쁜 냄새는 아니란 소리겠지. 카게야마는 리에프가 들고 있던 봉지를 받아 들고는 내용물을 차례대로 꺼냈다. 유부초밥이 하나, 둘, 셋, 넷..
*연반AU 1월의 분위기는 하늘의 떠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왠지 모를 부유감과 함께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간다. 바뀌는 것은 달력의 숫자뿐이며 해가 바뀐다고 해서 인생이나 생활이 달라지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기대가 가득 찬 표정으로 거리를 오고간다. 특히나 카게야마의 직장인 바(Bar)가 있는 번화가는 더욱 그러했다. 카게야마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을 떠올렸다. 알코올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손님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했고 새해가 되자마자 저마다 들고 있던 술잔이나 술병을 비웠다. 왁자지껄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카게야마는 새해 인사를 건네 오는 손님들에게 적당히 인사를 하며 셰이커를 흔들었다. 한 해가 갔다는 아쉬움도,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는 고양감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