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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오이카게] 흘러넘치는

RANNNTAKU 2017. 5. 18. 21:07

 

     살아있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단지 호흡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는 한낱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이에 어떤 이는 나의 시간을 경외했으나 어떤 이는 섭리에서 벗어난 이단이라며 저주했다. 저주가 통한 걸까, 수없이 많은 존재가 세상에 떨어졌다가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져갔다.

 

     태양과 달은 매일 새로웠지만 늘 같은 하늘을 맴돌았고, 인간은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일정한 범주 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알 수 없던 거대한 세계 속에서 보자면 그들은 쳇바퀴를 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나는 오래 전 내게 이단이라 손가락질했던 인간을 비웃었다. 나는 오직 인간의 짧은 시간 속에서만 섭리로부터 벗어난 존재였다. 그가 틀렸어! 공허한 깨달음을 얻은 자아가 소리치며 그를 조롱했다.

 

     이후 내 삶은 급격하게 죽음에 가까워졌다. 무얼 해도 세상과 유리遊離된 듯 느껴졌고 심장은 한없이 식어갔다. 차가운 심장이 온기를 갈구할 때마다 나는 다른 이의 몸을 탐하여 내 심장을 위한 땔거리로 삼았다. 아주 손쉬운 방법이었다. 인간이든 인간이 아닌 자이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살짝만 흘려주면 내게 쉬이 체온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임시방편이었을 뿐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스스로를 인내심 있는 편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금방 싫증을 내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동족들은 저마다 미치지 않기 위해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래 산 자일수록 별난 취미를 즐기는 경향이 짙었는데, 아마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 까닭이리라. 그러한 자들은 살갗보다 안쪽에 있는 무언가를 좋아했다. 가령 붉은 피와 같은. 온건한 자는 한두 명의 피를 뒤집어쓰면 만족했지만 더욱 대담한 자는 마을이나 나라를 통째로 망가뜨리기도 했다.

 

     나의 별난 수집벽이 눈을 뜬 건 그러한 유행으로부터 한참 후, 취미가 고약하기로 소문난 놈의 연회장에서였다. 나는 2층에서 난잡한 연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대장을 받았었던가? 왜 그곳에 있었지? 자세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혼이 닳는 줄 모르고 쾌락만을 탐닉하는 목소리가 내 귀를 찢을 듯이 흘러넘쳤던 것만이 생각난다. 분명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시종이 내온 포도주 맛이 생각보다 좋았기에 나는 포도주만 연신 마셨다.

 

     그러다 문득 눈물을 흘리는 어떤 인간을 보게 되었다. 영혼에 고하는 이별주였을까, 아니면 주체 못할 쾌감에 흘리는 환희였을까. 혹은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약에 취해 아픈 줄도 모르고 다리를 한껏 벌리고 있었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그가 흘리는 눈물이 관자놀이를 따라 머리카락을 적셨다,

 

     불미不美한 그림에서 어울리지 않게 빛나는 색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즉시 조그마한 유리병을 만들어 그의 눈물 한 방울을 가두었다. 연회가 끝나고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죽었거나 죽지도 못할 만큼 폐인이 되었거나, 뭐 둘 중 하나겠지.

 

     이후 나는 눈물을 수집하고 다녔다. 전쟁터에서 부하들의 시체를 묻은 장군의 눈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눈물, 전염병으로 약혼자를 잃은 이의 눈물... 눈물을 담은 유리병이 장식장 하나를 꽉 채울 즈음에는 괴팍한 취향을 가진 녀석으로 낙인찍혀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뒤에서는 욕할지언정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혀를 놀릴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나의 걸작을 줍게 된 곳은 우연히 지나게 된 작은 산마을이었다. 산적 떼가 휩쓸고 갔는지 마을에 시체가 즐비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제 몸보다 큰 시체를 옮기고 있는 아이 하나뿐이었다. 아이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가지런히 눕히고 그 위에 모포며 옷가지를 덮어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꽃을 꺾어와 시체의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아이를 지켜보았다. 뇌수가 튀어나오고 팔다리가 뜯겨나간 시체 앞에서도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어둑해질 무렵 시신을 모두 수습한 아이는 바닥에 앉아 말없이 그것들을 보았다. 저 나름대로의 장례 의식이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이기적인 성미였기에 아이를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울지 않니?”

 

     묻자 아이가 나를 보았다. 죽음을 본 어린 아이답지 않게 또랑또랑 빛나는 눈이었다. 아이는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슬프지 않니?”

 

     아이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다가 팔이 뜯긴 시신을 가리켰다. “이 아저씨는 제게 밥을 제일 많이 주셨어요. 그리고 밥값을 해야 한다면서 이상한 일을 시키곤 하셨죠. 아저씨 앞에서 옷을 다 벗고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기 같은 거요.” 아이가 이번에는 그 옆의 얼굴이 뭉개진 시신을 가리켰다. “이 분은 아저씨 부인인데 평소엔 상냥하시다가도 어떤 날은 절 도둑고양이라면서 할퀴고 때렸어요. 재미있죠? 저보고 고양이라면서 아줌마가 더 고양이 같이 굴었어요. 힘은 고양이보다 셌지만.” 그리고 이번에는 몸을 돌려 머리통이 깨진 시신을 가리켰다. “이 분은 부인이 도망가고 혼자 사는 아저씬데 절 가장 많이 때렸어요. 부인이 도망갔다고 자기 무시 하냐면서. 이 아저씨 침대가 제일 냄새 나서 싫었어요.” 이 외에도 몇 명을 더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던 아이는 말을 마치자 내게 되물었다.

 

     아저씨, 슬픈 게 뭐에요?”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다리를 끌어안으며 무릎에 고개를 턱하니 올렸다. 허름한 옷 사이로 훤히 드러난 다리에 멍 자국이며 흉터가 가득했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은 여기저기 부르터있었다.

 

     자랑은 아닌데요, 전 울어본 적이 없어요. 갓난아기 때 산속에 버려져서도 안 울었대요. 마을 아줌마 아저씨들한테 맞을 때도 안 울었어요. 그럼 독하다면서 덜 때렸거든요. 독한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술이 독한 건 알겠는데. 아이가 말라붙어 피가 나는 제 입술을 빨면서 중얼거렸다. “우는 건 슬플 때 하는 거죠? 그럼 난 슬펐던 적이 없어요.”

 

     천진하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나는 기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일족의 흉한 천성이 내 안에서 마구 날뛰었다.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떨어지는 유리구슬 같은 눈물을 핥아보고 싶었다. 울며 내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 순간 나의 얼굴은 틀림없이 흉하기 그지없을 터였다.

 

     그럼 내가 가르쳐줄까?” 악마가 낮게 물었다. 깊은 바다색 눈동자가 내 머리에 길게 솟은 뿔을 응시했다.

     아저씨 이름은 뭐에요? 난 카게야마인데.”

     글쎄, 무얼까. 사실 나도 내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사람들은 마왕이라는 조잡한 이름으로 부르긴 하더라만.”

     마왕 아저씨구나.”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아이의 손은 너무 작아서, 정말이지 바스러뜨리고 싶을 만큼 너무나 작아서 나는 부러 그것을 잡지 않았다.

 

 

 

 

 

*

 

     성이 오랜만에 부산스러웠다. 이유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내가 데려온 수집품 때문이었다. 좀처럼 말이 없는 문지기에서부터 성의 관리인까지 야단을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용사라 칭하는 인간 수백을 베어 목을 매달아도, 귀한 보석으로 방을 꾸미고 눈물 병을 늘어놓아도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던 나의 시종장도 크게 뜬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저에게 쏠린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저를 보는 악마들을 구경하였다.

 

     주인님의 새 수집품인가?

     너무 더러운데. 걸치고 있는 넝마 좀 보라지.

     , 주인님이 하시는 일에 감히.

 

     나이가 제일 많은 시종이 아랫것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는 그들을 눈으로 한 번 훑었다. 때때로 수다스럽긴 해도 천성이 나쁜 이들은 아니었다.

 

     목욕물을 데워다오. 아이가 입을 옷도 가져오고.”

 

     시종들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제각기 흩어졌다. 아이는 그 일사불란한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내게 시선을 주었지만 달리 입을 열지는 않기에 나도 별 말 없이 방으로 직행했다.

 

     성에서도 내 방은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기에 한참을 걸어야했다. 웬만한 인간은 가기도 전에 진이 빠졌다. 심지어 아이는 하루 종일 시체를 나르지 않았던가. 조그만 몸에 버거운 일일 텐데도 아이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다리가 아프진 않니?”

 

     나는 걸음을 멈추어 보았다. 두 걸음 정도 뒤에서 걷던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은 피곤해보일지언정 숨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픈데 참을만해요.”

     울어도 된단다.”

 

     얄팍한 속셈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는 담담한 얼굴로 날 빤히 보기만 하였다. 쪽빛 눈동자가 밤보다 깊어보였다. 많은 눈을 보아왔지만 아이의 눈은 유독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아저씨는 울보에요?”

     그게 무슨 말이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팔짱을 끼고 살짝 턱을 들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독특한 수집품이긴 했으나 한낱 인간 아이일 뿐이었다. 수틀리면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눈물을 짜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손짓 한 번이면 끝날 일이었다.

 

     툭 하면 안 우냐고 물어봐서요. 별로 울 일 아닌데... 마왕 아저씬 잘 우나 봐요.”

     아니야.”

 

     나는 아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했다. 다소 어색한 대답이었다. 괜히 목이 간지러워 기침을 했다. 아이는 고개가 아프지도 않은지 날 쭉 보다가 이윽고 시선을 돌렸다. 그 행동이 눈에 퍽 거슬렸다.

 

     아니래도.” 말을 덧붙이고서 나는 후회했다. 꼬맹이 같은 짓을 했다.

     알았어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한 아이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성의 주인은 나인데 저가 주인이라도 된 양 걸어갔다.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으레 마란 그러한 존재 아닌가. 나는 착실하게 걸어가는 아이의 목덜미를 덜컥 잡아 세우고 옆으로 뻗은 좁은 복도를 가리켰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 길로 가야해.”

 

     아이는 아, 하고 작게 소리를 내더니 방향을 바꾸었지만, 곧바로 걸어가지는 않았다. 그림이 장식되어 있고 밝게 불이 밝혀진 복도와는 반대로 어둡고 캄캄한 탓이리라. 당연했다. 이 길은 본디 아랫것들이 썼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길이었다. 나는 먼저 발을 내딛었다. 희미한 불빛만이 켜진 길은 세 걸음만 걸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즉 세 걸음만 걸어가면 아이는 내 모습을 놓치게 된다는 뜻이었다. 짐작대로 아이는 내가 두 번째 발걸음을 떼었을 때 부리나케 따라왔다. 흡족한 마음이 들어 나는 조용히 웃었다.

 

 

 

 

 

*

 

     아이는 모든 행동이 조용했다. 발가락 끝으로 걸음을 하였고, 익숙하지 않은 성 안에서 길을 잃어도 아이는 울거나 큰 소리로 소리치지 않았다. 단지 아저씨, 마왕 아저씨 하며 작은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똑똑한 아이는 그것만으로도 내 귀에 충분히 들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는 자주 길을 잃고는 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방을 나가 탐험을 즐기는 탓이었다. 복도에 걸린 유화와 조각상, 미로 같은 길은 전부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작은 아이를 찾아 방으로 데려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나는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종종 그림을 만지거나 장식을 건드리는 바람에 시종들이 불만을 토로하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마도장魔道長이 웃으며 말했다. 가까이 두고 있으나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었다. 실실 웃는 얼굴이 내 눈에는 그다지 탐탁지 않았다. 위로 뻗친 까만 머리카락이 뱀처럼 느껴졌다.

 

     마음에 들지 어떨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하찮은 인간 아이를 꽤나 감싼다는 이야기가 돌던데요.”

 

     마도장이 유리잔을 천천히 돌렸다. 어렵게 구했다던 술은 몇 걸음 떨어져있어도 향이 느껴졌다. 빛깔도 피처럼 붉은 빛을 띠었다. 그는 유달리 붉은색을 좋아했다. 두르고 있는 로브도 새빨갰다.

 

     아랫것들 입단속을 다시 한 번 해야겠군.”

 

     나는 빈 잔을 내밀었다. 그가 유리병을 가져와 내 잔에 알맞게 따랐다. 술에서는 달콤하면서도 황홀한 향이 흘러나왔다. 틀림없는 최상품이었다. 언짢았던 기분이 조금은 풀어졌다.

 

     어떠신가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장은 웃으며 남은 술을 털어 넣고는, 잔을 새로 채웠다.

     저는 술이 좋습니다. 무료함을 약간이나마 덜어주거든요. , 무료를 달래는 데에는 장난도 좋지요. 마왕이시여, 제가 당신을 위해 그 조그만 아이에게 밤 시중드는 법을 가르치는 건 어떻습니까? 잠만 자는 아이보다는 훨씬 흥미로우리라 생각합니다만.”

     감히 내 것에 손을 대겠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마도장을 낮게 노려보았다. 그가 양 손을 들며 웃어보였다. “하하, 제 농담이 지나쳤군요.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술을 봐서 오늘만은 용서하지.”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쉬십시오.”

 

     그가 허리를 한껏 숙이고는 곧장 방을 나갔다. 나는 술잔을 비우고 아이가 잠들어 있는 침실로 향했다.

 

     인간에게 잠이란 필수불가결하다. 인간의 고문 중에는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의 일족 또한 잠을 잔다. 그것은 필요해서라기보다 시간을 때우거나 간접적인 죽음을 느끼는, 일종의 취미와 닮은 행위였다. 허나 우리는 꿈을 꾸지 않기에 꿈을 보고 싶다면 몽마에게서 꿈을 사야만 했다. 꽤나 이색적인 경험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한 작위적인 꿈 따위는 꾸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지?

 

     소리는 내지 않고 아이에게 물었다. 그동안 살아온 배경 탓인가, 아이는 마을과 툭 떨어져있는 낯선 성에 와서도 적응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도 보아라, 작게 부풀기를 반복하는 가슴이 아니었다면 죽었다고 해도 믿어질 터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초연한 표정과 달리 자는 모습은 어린 아이 그 자체였다. 두 눈은 가볍게 감고, 입은 아주 살짝만 벌려 색색 숨을 쉬었다. 세상의 고달픔이라고는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이에게 몸을 가까이 대어보았다. 아이의 살 냄새가 느껴지는 숨결이 내 입술을 간질였다. 마지막 잠을 청해본 날이 언제였던가. 나도 예전에는 다른 일족들과 마찬가지로 잠을 잤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무료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도 다시금 같은 시간의 연속이었기에 잠에도 금방 싫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어두운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 당장 몽마를 데려와 아이에게 끔찍한 꿈을 사주면 어떨까? 아이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깰 수 없는 괴로움에 발버둥을 치겠지. 당돌하게 울어본 적이 없다고 한 아이의 눈에서 당장에 눈물을 뽑아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

 

     음침한 모사에 내가 입매를 일그러뜨리고 있을 즈음,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바르작거렸다. 조그마한 손이 경련을 하듯 약하게 떨리기도 했다.

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지?

 

     무슨 연유에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의 손에 가만히 내 손가락을 올려보았다. 아이가 내 두터운 손가락을 아기처럼 꼬옥 잡더니 이내 평온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규칙적인 숨소리가 이어졌다. 나른한 풍경이었다.

     일족 특유의 변덕스러움 탓이다. 내 몸에 흐르는 피를 핑계 삼아 머리를 뉘였다. 아이의 곁에서라면 나도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 본 채 눈을 감으며 물었다.

 

     토비오, 나도 꿈을 꿀 수 있을까?”

 

     너와 같은 꿈이라면 좋을 것 같구나. 그게 어떤 꿈이라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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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온리전 2 "그 선배에 그 후배"에 나왔던 배포본 내용입니다.

나중에 몽마 쿠니미가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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